[작품제목]
예술성이라고 하기엔 뼈대가 없어 흐물흐물한, 그렇다고 취향이라고 하기엔 거슬릴 정도로 삐죽삐죽 가시 돋은 나의 어떤 성향의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작품해설]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내가 만든 글, 그림, 사진, 음악, 영화는 과연 작품의 반열에 들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렇게 생산된 ‘반짝이는 것들’ 중 작품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극소수다. 그저 섬광처럼 잠깐 이목을 끌었다가 곧바로 휘발될 뿐이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활성화되면서 ‘반짝이는 것들’은 더 많이, 더 일찍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작품으로 거듭나지 못한 것들, 실패한 예술성, 부정당한 존재들이 뒤섞인 화면을 우린 매일 목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반짝이는 것들’을 제작한다. 취향이라는 잔상에만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동적인 취향과 능동적인 예술성 사이에서 비틀거린다.
이 작품은 ‘반짝이는 것들’과 작품의 경계에 대해 탐구한다. ‘오래된 시작’이라는 전시제목에 걸맞게 작가는 인스타그램을 처음 사용했을 때 기획했던 ‘색깔 프로젝트’를 끄집어냈다. 2016년에 그는 랜덤으로 고른 색깔과 짧은 글을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올렸었다. 색깔을 차곡차곡 쌓으면 자신을 표현하는 흥미로운 패턴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 3개월동안 50여개의 색깔이 모였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후 일반적인 게시물을 올리면서 색깔들은 인스타그램 지층 가장 밑바닥에 깔린 채 수면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색깔들을 다시 캐내어 억지로라도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인스타그램과 똑같이 3x3 정방형 구조에 그때 올렸던 색깔들을 그때 순서대로 나열하여 빔으로 쏘았다. 그리고 그때 작성했던 짧은 글 몇 개를 프린트한 뒤 물을 담은 진공팩에 넣어 벽에 부착했다. 팩 안에 갇힌 채 물에 잠긴 텍스트는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게다가 굴절된 글씨는 왜곡된 목소리를 자아낸다. 성숙하지 않은, 불완전한, 미완성인, 흐릿한, 뿌연,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글이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전시공간에 ‘작품’이라는 명찰을 달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질문을 마주한다. ‘반짝이는 것들’과 작품의 경계는 무엇일까? ‘반짝이는 것들’을 반짝이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왜 수많은 ‘반짝이는 것들’은 작품이 될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반짝이는 것들’은 쓸모가 없는 걸까? 내가 볼 수 있는 반짝임을 왜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걸까? 내가 만든 ‘반짝이는 것들’은 모두 실패한 걸까? 그렇다면 그 안에 담긴 나의 예술성도 가치가 없는 걸까? 예술성에 기반한 나의 존재도 무의미한 걸까? 하지만 그것들은 너무나 손쉽게 작품으로 탈바꿈하지 않는가? 다시 한 번, ‘반짝이는 것들’과 작품의 경계는 무엇일까?
2016.07~2020.09
디지털 영상, 진공팩, 종이, 물
2min
* 이 작품은 <오래된 시작 展>에 전시되었습니다.
전시 홈페이지 https://tofriend.wixsite.com/2020o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