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ju.
에드워드 양 <공포분자>의 리얼리즘 연구 – ‘전체성’ 개념을 중심으로
I. 들어가는 말
에드워드 양은 허우샤오셴, 차이밍량과 함께 대만 뉴웨이브 영화를 이끈 주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도시 속 현대인들의 삶과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대만의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혼란, 그리고 문화적 진화를 심도 있게 탐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접근 때문에 에드워드 양의 영화에서 인물과 배경의 관계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작품에서 인물은 그저 허구적인 대상이 아니라 대만인들의 실제 삶을 반영하는 존재이며 배경은 영화 촬영을 위한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대만의 역사적 및 사회적인 관계가 얽혀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영화라는 매체로 현실을 전달하기 위해 인물과 배경을 어떻게 다루고 엮었는지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를 중심으로 탐구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위해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으로부터 ‘전체성’ 개념을 빌려와 적용해 보고자 한다. 우선 에드워드 양의 생애와 대만 뉴웨이브 영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고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어떠한 접점을 가지는 확인해 보자.
II. 에드워드 양과 대만 뉴웨이브 영화, 그리고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에드워드 양은 1947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1949년 장제스의 중국국민당이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에 패배하여 중화민국 정부를 대만으로 옮기는 국부천대(國府遷臺)가 일어나면서 그는 중국국민당의 공직자였던 부모님을 따라 타이베이로 이주하였다. 에드워드 양은 어렸을 때부터 유럽, 할리우드, 홍콩 등 해외영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으며 특히 그의 영화적 감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만화에 깊이 심취하였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국립 자오퉁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였으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그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영화학과에 진학해 영화를 향한 그의 열정에 불을 붙이려고 했으나 상업적인 할리우드 제작 방식을 추구하는 학풍과 뜻이 맞지 않아 자퇴한다. 그는 시애틀로 거취를 옮겨 컴퓨터 디자인 업계에서 경력을 쌓던 중 뉴 저먼 시네마 운동의 대표자 중 한 명인 베르너 헤어조크의 작업과 연설, 특히 <아귀레, 신의 분노>를 보고 영화제작에 대한 꿈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대만으로 귀국한 에드워드 양은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대만의 영화 환경은 국부천대 이후 수십 년 동안 독재 정치를 행했던 국민당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특히 국민당 소속 기관이었던 중앙전영공사는 대만의 영화 산업을 장악하면서 촬영과 제작을 통제했을 뿐만 아니라 엄격한 검열을 적용하였다. 따라서 1970년대까지 대만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소설을 각색한 현실 도피성 멜로드라마, 대거 수입된 홍콩 영화를 따라 하는 무협 작품, 그리고 정부의 사상을 홍보하는 애국적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정형적, 상업적, 선전적인 영화들이 마구잡이로 제작되면서 대만의 영화 창작 수준은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이러한 침체기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중국을 견제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을 면하기 위해 국민당은 서방 국가와의 교류를 시작하였으며 이는 수많은 외국 예술영화의 유입을 촉진했다. 이는 많은 지식인들과 학생들에게 새로운 지적 토대를 선사했고 자연스럽게 대만의 영화인들도 획기적인 예술영화를 찍는 것을 희망하게 되었다. 두 번째, 1987년에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검열이 느슨해졌고 대만의 창작자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세 번째, 해외영화 수입에 의존하고 제작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진 대만의 영화 산업을 쇄신하기 위해 중앙전영공사는 새로운 영화 양식과 감독들을 지원하는 제작 시스템 정비에 착수하였다. 중앙전영공사는 옴니버스 영화인 <광음적고사>를 연출할 4명의 신인 감독을 모집했고 이 중 에드워드 양이 포함되었다. 종래 주류 영화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광음적고사>는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시작을 알렸으며 이 작품으로 데뷔한 에드워드 양은 이후에도 영화 혁명 운동의 활동적인 기수로서 역할을 다했다.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방향성은 1986년에 작성된 「대만 영화 선언」에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54명의 대만 영화감독이 서명한 이 선언문은 당면한 대만의 영화 정책과 산업 및 평론에 대한 깊은 우려와 앞으로의 기대를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은 첫 번째, 영화 진흥보다는 정치 선전에 관심이 더 많은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이고 두 번째, 예술 문화에 있어서 영화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이며 세 번째, 홍콩과 할리우드 영화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만 영화 평론가들에 대한 비판이다.[1] 에드워드 양 또한 「대만 영화 선언」에 서명한 54명의 영화감독 중 한 명이었으며 이러한 방향성은 그의 영화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태동은 흥미롭게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발생 과정과 다소 유사한 부분이 있다. 1920년대 이탈리아의 영화 산업 또한 과거에 영화 대국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심각하게 악화되어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무솔리니 정권은 1930년대 초부터 영화학교 설립, 대형 스튜디오 개설, 제작 지원 및 투자, 베니스 영화제 개최 등 대대적인 사업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정부의 영화 진흥 정책을 통해 이탈리아의 영화 산업은 조금씩 회복되었으나 여전히 파시스트 정권의 통제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화려한 상류층의 삶이나 로마 제국의 영광을 그린 영화들이 주로 제작되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독일 나치에게 점령을 받다가 1944년 연합군에 의해 해방됨으로써 공산당, 사회당 등이 포함된 반파시즘을 표방하는 연합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검열이 느슨했다. 따라서 이탈리아의 영화 제작자들은 파시스트 정권의 잔재이면서 할리우드 영화의 모방인 현실 도피적 영화들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즉, 무솔리니 정권의 영화 진흥 정책을 통해 교육을 받고 제작 경험을 쌓은 감독들이 검열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시기를 만나 전후 높아진 정치 사회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하여 그동안 외면해 왔던 이탈리아의 현실에 대한 고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함으로써 네오리얼리즘이 탄생한 것이다. 이는 진부하고 상업적이며 편향적인 작품들에 의해 저하된 영화 산업을 끌어올리려고 했던 정부의 정책, 그리고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진 환경을 따라 기존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던 대만 뉴웨이브 영화와 비슷한 궤적을 보인다.[2]
따라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유사한 발전 과정을 밟은 대만 뉴웨이브 영화를 전자와 연관하여 분석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특히 에드워드 양이 대만 뉴웨이브 영화를 이끌었던 것처럼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선두 주자였던 로베르토 로셀리니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고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미학적 개념인 ‘전체성’을 에드워드 양의 작품에도 적용하는 작업을 다음 장에서 실행해 보고자 한다.
III.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에드워드 양의 작품에 나타나는 ‘전체성’ 개념
앙드레 바쟁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에 대해 이탈리아의 모든 감독 중 네오리얼리즘 미학을 가장 멀리 밀고 나간 인물이라고 말하며 그를 옹호한다. 그는 아이프르 사제에게서 빌려온 네오리얼리즘에 대한 정의[3]를 제시하며 전체적인 의식을 통해 현실을 전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네오리얼리즘은 정치적, 도덕적, 심리적, 논리적, 사회적, 혹은 가능한 모든 방식의 분석을 거부하며 현실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정신적 태도를 전제로 한다. 부연하자면 네오리얼리즘은 예술가를 통해서 본, 그의 의식에 의해 굴절된 현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바쟁은 로셀리니가 인물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사랑하는 것을 자신의 연출 개념의 원칙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현실에서 이미 합쳐져 있는 것, 즉 인물과 배경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4] 즉, 대상에 대한 인위적인 조작을 기본 방식으로 삼는 고전적인 영화 연출과 달리 네오리얼리즘은 현실의 전체성을 존중하면서 그것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접근을 취한다. 그리고 현실의 전체성에 대한 예술가의 의식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에 영화 이미지는 그 이미지가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 혹은 존재의 정신적 대체물로서 관객에게 주어진다.[5]
현실의 요소를 분석하고 선택하여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또는 인물의 의식이 투영된 현실을 전체적으로, 즉 ‘덩어리째’ 전달하는 것이 바쟁이 말하는 로셀리니의 네오리얼리즘이다. 이러한 ‘전체성’이라는 개념을 에드워드 양의 작품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에드워드 양은 본인의 작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내 목표는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영화로 타이베이시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다. 나는 최근 타이베이에 변화가 발생한 방식과 이들 변화가 타이베이 시민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탐구하려 한다.”[6] 기계적인 기술로 대상을 객관적으로 포착하는 사진이 아니라 화가의 주관을 반영하여 인물을 그리는 초상화에 자신의 작업을 빗댄 에드워드 양은 로셀리니와 마찬가지로 그의 의식을 통해서 눈앞에 펼쳐진 대만의 현실을 영화로 전달하고자 했다. 즉, 그는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현대의 대만인들이 겪었던 정치 사회적 혼란과 인간관계의 변화에 대해 깊은 자의식을 가지고 접근하였다.[7]
이렇게 의식이 투영된 대만의 현실을 영화로 담아내는 과정에서 에드워드 양은 로셀리니가 인물과 배경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로 전달했듯이 대만인들의 모습과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전체적으로 포착하고자 했다. 즉, 그는 현대 사회의 대만인들과 타이베이라는 도시가 얽히고설킨 현실을 ‘덩어리째’ 영화로 담음으로써 현실의 전체성을 존중하고자 했던 것이다. 에드워드 양의 영화에서 대만의 도시, 특히 타이베이는 항상 중심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그는 현대 문명 속 일반인들의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대만인들의 일상적인 삶과 타이베이의 도시 공간이 중첩하는 현실을 영화라는 매체로 충실하고 객관적이며 가능한 한 완전하게 묘사하려고 했으며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묘사되는 타이베이와 실제 타이베이 사이에는 가설적인 치환 관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즉, 에드워드 양의 영화에서 타이베이는 감독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과 문화적 습관이 투영된 공간이면서도 대만인들의 삶과 깊게 연관되어 있는 실제 물리적 공간으로서 전달된다.[8] 이러한 점에서 에드워드 양의 작품은 전체적인 의식을 통해 현실을 전체적으로 전달한다는 의미의 네오리얼리즘과 많은 부분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에드워드 양은 본인의 영화, 특히 <공포분자>에서 ‘전체성’이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공포분자>의 제작 및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 대만에서 어떠한 정치 사회적 혼란과 문화 경제적 발전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이에 따라 인간관계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공포분자>에 나타난 인물과 배경의 통합 속에서 대만 사회의 현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세 가지 키워드 – 불안, 고립, 공허 – 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IV. <공포분자>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에 대만에서 일어난 변화
<공포분자>는 1986년에 제작된 에드워드 양의 세 번째 장편 영화이며 <타이페이 스토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함께 타이페이를 배경으로 한 ‘타이페이 3부작’ 중 하나이다. 특히 <공포분자>는 프레드릭 제임슨이 비평문에서 상세하게 서술했듯이 개인적인 공간과 도시 전체의 사이에 구축된 끊임없는 관계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9] 그렇다면 <공포분자>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대만에서 사람들의 삶과 도시 및 국가 간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우선 국제 정세에서 대만은 불안한 위치에 있었다. 1971년 유엔 총회가 중화인민공화국만이 중국을 합법적으로 대표하는 국가라고 인정함으로써 대만은 독립된 국가로서의 국제법적 지위를 박탈당했다. 이에 대한 결과로 대만은 유엔뿐만 아니라 모든 국제 기구에서 쫓겨났으며 주권 국가로서의 외교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고립되어 갔다. 국제 사회의 외면을 극복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서방 국가의 지원이 절실했으며, 따라서 대만은 신자유주의적인 노선을 택함으로써 해외 국가들과의 교역 관계를 증진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대만은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루지만 커다란 사회 문제와 혼란이 함께 따라왔다.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한 경제 발전은 새로운 자본 계급을 탄생시켰다. 이 계급은 사업이나 전문적인 기술을 소유한 대만 본성인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국민당의 독재 정치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이들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국민당 출신의 대만 외성인들로 구성된 기존 중산층은 위협을 느꼈으며 두 계급 간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었다. 국민당 정부는 이러한 대립을 억압적인 방식으로 통제하였고 이로 인해 위태로운 분위기를 감지한 기업들은 대만에서의 사업을 철수하거나 다른 국가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높은 실업률이라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사회적인 불안이 도시 곳곳에 만연하게 되었다. 결국 신진 계급이 주축이 되어 1987년 국민당의 붕괴를 이끌어냈지만 이를 이루는 과정에서 타이베이는 폭력과 살인, 그리고 정부의 은폐로 얼룩지고 말았다.
또한 급격한 경제 발전은 자가용과 호화 저택 등 과시 소비를 촉진하였으며 컴퓨터와 반도체 등 정보 기반 산업이 대두되면서 정서적인 인간관계보다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 인해 사회 계층의 격차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지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악화되었고 계층 상승을 꿈꿨던 대만인들은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했던 대만인들은 점점 지쳐갔으며 이로 인해 공허함과 권태로움의 그들의 삶에 깊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10]
이렇게 국외적으로나 국내적으로 혼란스러웠던 대만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함과 단절감 그리고 공허함이 사회 전체적으로 짙게 깔려 있었다. 이것이 에드워드 양이 보았던 대만의 현실이었다. 그는 <공포분자>에서 이러한 대만의 상황을, 앞에서 설명했듯이, 인물들의 삶과 타이베이라는 도시 공간이 얽히고설킨 모습을 전체적으로 포착함으로써 영화로 전달하고자 했다.
V. <공포분자>에서 ‘전체적’으로 나타난 대만의 현실 – 불안, 고립, 공허를 중심으로
1. 불안
에드워드 양의 조수였던 Yang Hongya가 주거단지에 위치한 거대한 구 모양의 가스탱크 장면들이 없었다면 <공포분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이 기이한 구조물은 <공포분자>의 중요한 시각적 모티프 중 하나이다 (사진 1). 의사, 소설가, 사진가, 혼혈소녀의 관계에 접점이 생길 때마다 가스탱크도 그들과 연결고리를 만들려는 것처럼 작중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가스탱크는 실제로 국민당 관할기구인 대만가스공사의 소유물이었으며 이것을 타이베이 시내에 설치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가스 누출 및 폭발 위험성 때문에 격한 반대와 시위를 표했지만 이는 반영되지 않았다.[11]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가스탱크가 주거지역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은 <공포분자>의 인물들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언제든지 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주체 - 결혼 생활이 파탄 나고 승진이 물거품 되면서 아내의 외도 대상과 자신의 상사를 살해한 의사, 남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는 내용으로 유명 문예지에 등단하는 소설가, 마치 사냥하듯이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 비행을 일삼으며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상해를 입히는 혼혈소녀 - 로 변모할 수 있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12] 그리고 이렇게 가스탱크와 인물들이 공유하는 위험성에 대한 종합적인 전달은 국민당이 대만인들에게 가했던 위협과 혼란스러운 사회 변화로 인해 대만인들이 극심하게 느꼈던 불안이라는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1]
불안이라는 맥락에 있어서 인물과 배경이 중첩된 현실을 전체적으로 전달하는 또 다른 부분은 고층 건물의 창문을 닦는 노동자가 짧게 등장하는 장면이다 (사진 2와 3). 답답한 결혼 생활과 창작의 고통에 극심한 불안을 느끼던 소설가는 자신의 옛 연인이자 외도 대상자의 사무실에서 창문을 통해 타이베이의 경관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가 창문을 살짝 열면서 건물 유리를 닦는 노동자의 모습이 그녀의 얼굴 건너편에 비친다. 대만의 급격한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고층 건물에 안전장치 하나 없이 위태롭게 매달려 유리를 닦는 노동자의 모습은 불안함이 요동치는 소설가의 내면과 맞물리면서 서민과 중산층이라는 사회 계급에 상관없이 대만인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불안한 삶과 현실을 나타낸다.
[사진 2]
[사진 3]
2. 고립
이번에는 단절과 폐쇄의 측면에서 유사한 장면들을 살펴보자. 비행 범죄가 발각되어 혼혈소녀는 처벌로 집에 감금당한다. 그녀는 전화번호부에 적힌 번호를 무작위로 골라 통화를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는데 카메라는 심심해하는 혼혈소녀의 모습과 방 벽에 위치한 철창을 하나의 롱테이크 샷으로 담아낸다 (사진 4). 이러한 철창은 타이베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강도를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가정집에 설치되어 있었다. 도시 미관에 해를 끼칠 정도로 철창의 수가 많아지자 1980년대 초에 국민당은 타이베이의 모든 철창을 제거하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었고 결국 철창은 타이베이 도시 경관 속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13] 이렇게 철창은 감금당한 혼혈소녀의 상황과 처지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불안한 사회 환경으로 인해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한 대만인들의 삶을 내비친다.
[사진 4]
이러한 고립과 단절은 서민적인 인물인 혼혈소녀뿐만 아니라 중산층에 속하는 의사와 소설가에게도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명망 높은 문예지에 등단하여 명성을 얻은 소설가는 남편인 의사와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자신의 창작물을 인정받은 소설가와 무너진 결혼 생활을 회복할 수 있다고 희망하는 의사는 각자 다른 행복에 잠시 빠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본인의 망가진 결혼 생활을 기반으로 하여 쓴 소설가의 작품에 대한 내용이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고 동시에 레스토랑 건물의 철창이 그들의 모습을 가린다 (사진 5). 혼혈소녀의 방에 있는 철창과 유사하게 레스토랑 건물의 철창은 내레이션과 더불어 두 인물의 단절된 결혼 생활 및 삶 전체를 보여준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지만 실상은 서로에게 마음이 완전히 닫혀 있으며 소통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일상적인 삶 전반에서 드러난다. 즉, 의사와 소설가라는 인물 그리고 레스토랑 건물의 철창이라는 배경이 전체적으로 담긴 이 장면은 대만 중산층이 과시하는 부유함과 행복 이면에 고립과 단절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사진 5]
<공포분자>에서는 4명의 주요 인물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삶이 타이베이의 건축 및 도시 공간과 관계하는 지점을 포착하여 대만 사회의 고립되고 외로운 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에드워드 양은 의사가 일하는 병원의 건물을 파편적으로 촬영하고 편집으로 연결했는데, 이 단편적인 장면들은 모두 병원 내부의 연구실을 분절된 독방처럼 그려낸다 (사진 6). 그리고 이어서 홀로 눈물을 흘리는 연구원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진 7), 비록 이후에 제시되는 부장급 의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눈물의 원인이라고 유추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설명이 부재하더라도 병원 연구실에서 혼자 슬픔을 삭히는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의미를 충분히 전달한다. 즉, 차갑고 단절된 병원 연구실이 나타내듯이 서로 고립된 채 생활하는 대만인들은 홀로 눈물을 훔치는 연구원처럼 고독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 6]
[사진 7]
3. 공허
<공포분자>를 포함하여 에드워드 양의 작품 전체에는 공간에 인물이 덩그러니 남겨진 것처럼 연출된 장면이 빈번하게 나온다. 이를 통해 그는 “풍경이 내면으로 흡수되어 인물의 심리가 되는” ‘내면의 가시화’를 꾀했다. 즉, 인물과 배경이 한 쇼트에 담길 때 계열체가 지닌 고유의 분위기는 서로 섞이게 되는데, 인물의 내면은 배경을 파고들고 역으로 배경은 인물을 파고들면서 서로를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14] <공포분자>에서도 마찬가지로 ‘내면의 가시화’가 종종 등장한다. 특히 텅 빈 집안이나 사무실에 인물이 홀로 있는 모습은 그가 겪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렇게 인물과 배경이 한 장면에 담기지 않더라도 인물의 내면을 거쳐서 보여지는 배경을 통해 두 요소의 통합을 이루는 연출이 <공포분자>에 나타난다. 혼혈소녀에게 매혹된 사진가는 자신의 방에 그녀의 사진을 거대하게 인화해 두었는데 이를 발견한 그의 여자 친구는 집안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면서 화를 낸다. 그녀를 집에 놔두고 밖으로 나온 사진가는 육교를 건너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사진가의 관점으로 육교를 촬영한다. 즉, 지나가는 행인들을 따라서 좌우로 움직이는 사진가의 시선이 관객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사진 8). 비록 육교라는 배경에 사진가라는 인물이 삽입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의 공허한 시선은 육교 위 사람들의 스쳐 지나감을 강조하고 그렇게 보여지는 육교의 풍경은 덧없음에 빠진 사진가의 내면을 부각시킨다. 이렇게 배경 안에 인물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통해 두 요소가 섞이고 심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공포분자>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의 인물과 배경의 통합은 인물(또는 감독)의 의식이 투영된 현실을 전체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사진가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배경은 육교 위의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대만인들이기도 하다. 즉, 그의 권태로운 내면에 기반하는 시선은 단순히 육교 위의 사람들이 아니라 도시 환경 속 대만인들의 공허하고 무의미한 삶을 포착하여 전달한다.
[사진 8]
VI. 맺는말
대만은 20세기 내내 정치 사회적 격변을 끊임없이 겪었으며 이는 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인의 삶을 그리고자 했던 에드워드 양의 영화에도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그가 주축이 되어 이끌었던 대만 뉴웨이브 영화부터 대만의 사회적 변화와 이에 따른 영화 산업의 발전과 후퇴에 반응하여 촉진된 움직임이었다. 상투적인 상업영화의 범람과 정부의 엄격한 검열에 반발하여 등장한 대만 뉴웨이브 영화는 대만의 현실을 진정성 있게 묘사하고자 했으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네오리얼리즘이 발생한 과정과 많은 부분이 흡사하다.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감독인 로셀리니는 현실을 하나의 덩어리로 표현하는 것, 즉 인물과 배경을 분리하지 않고 예술가의 의식을 통해 보여지는 현실을 그 자체로 담아내는 ‘전체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개념은 에드워드 양의 작품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그는 현대 사회 속 대만인들의 삶과 타이베이라는 도시 공간이 얽히고설킨 모습을 ‘덩어리째’ 전달함으로써 본인이 의식하는 대만의 현실을 전체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에드워드 양이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대만은 독립 국가로서의 국제적 지위 박탈,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 사회 계급 간의 마찰, 1987년 계엄령 해제라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으며 따라서 에드워드 양이 보았던 대만의 현실은 급격한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혼란과 단절과 피로로 점철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는 <공포분자>에서 인물들(또는 대만인들)의 삶과 타이베이의 도시 배경이 중첩되는 지점을 포착하여 그것이 속한 불안하고 고립되며 공허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즉 전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했다.
<공포분자>에서 나타난 리얼리즘은 ‘전체성’ 개념 외에도 서사 구조, 인물 관계, 미장센 등 여러 가지 관점으로 연구할 수 있다. 특히 소설가가 쓴 작품의 내용이 영화 속 현실과 뒤섞이는 과정 그리고 살인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도록 모호하게 마무리되는 끝은 <공포분자>가 보여주는 리얼리즘 자체에 의심을 가지게끔 이끌기도 한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요소들에 각각 관심을 기울여 검토하는 작업은 앞으로의 또 다른 연구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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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한루, 정태수 (2024), 「에드워드 양 감독 영화에 나타난 재지성(在地性)에 관한 연구」, 『현대영화연구』, 제20권 2호, p. 190.
[2] 송영애 (2008),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정체성 형성 과정 연구: 등장과 쇠퇴 배경을 중심으로」, 『현대영화연구』, 제4권 2호, pp. 110-118.
[3] “(현실의) 모든 객관적, 주관적, 사회적, 기타 등등의 요소들은 (네오리얼리즘에서) 결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분석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서로 뒤얽혀 우글거리는 사건의 덩어리, 언제 어떤 움직임 속에서든 지속적이며 부피감이 있는 덩어리로 파악된다. 특히 여기엔 [정신분석에서의] 피분석자와 정반대 입장에서 인간과 세상을 더 이상 나누어 묘사하지 않는 방식이 존재한다...” 「카이에 뒤 시네마」 17호. (김태희 (2018), 「데시카와 로셀리니」, 『영화란 무엇인가? IV. 사실성의 미학: 네오리얼리즘』, 퍼플, p. 155 참조).
[4] André Bazin (2011), Qu’est-ce que le cinéma? [20e éd.], Éditions du Cerf, pp. 351-355.
[5] 안상원 (2017), 「앙드레 바쟁의 리얼리즘 영화이론 – 관객의 위치를 중심으로」, 『미학』, 제83권 1호, pp. 164-166.
[6] 임춘성 (2007), 「도시 폭력의 우연성과 익명성 – 에드워드 양의 위험한 사람들 읽기」, 『중국현대문학』, 제43호, pp. 419-420.
[7] 진성희 (2020),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 에드워드 양(楊德昌)의 <하나 그리고 둘>」, 『중국학논총』, 제67호, p. 230.
[8] 한루, 정태수 (2024), pp. 197-201.
[9] Fredric Jameson (1992), “Remapping Taipei”, The Geopolitical Aesthetic: Cinema and Space in the World System, Indiana University Press, p.153.
[10] Karen Ren (2024), “The Rebellious Slowness: Youth Culture, Political Resistance, and Historical Reminiscence in Taiwan New Cinema” [Master’s dissertation, McGill University], pp. 70-81.
[11] Ling-Ching Chiang(2013), “Reshaping Taiwanese Identity: Taiwan Cinema and the City “[Doctoral dissertation, University of Leicester], p. 164.
[12] 임춘성 (2007), p. 436.
[13] Ling-Ching Chiang (2013), p. 158.
[14] 강지원 (2021), 「에드워드 양 영화의 풍경 연구」,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pp. 6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