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리고 눈을 떴다.
새벽에 잠깐 깼던 기억이 났다. 날것의 감정이 웅덩이처럼 고여있었다. 이상하게도 가장 사소한 장면이 가장 뚜렷하게 비쳤다. 작별인사를 깜박한 채 떠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를 느끼기도 전에 끝나있고 멀어져있고 헤어져있다.
어쩌면 새벽에 눈을 뜬 게 아니라 길거리를 헤매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꿈처럼 안개가 짙게 깔린 밤이었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걷다가 패스트푸드점을 발견했다. 주문부터 조리까지 모든 과정이 기계로 대체된 곳이었다. 드라이브 스루에서 햄버거를 시켰다. 그 자리에 서서 먹었다. 상추는 찢어지고, 패티는 피를 머금었다.
입안을 우물거리며 영수증 뒤에 삼각형을 그렸다. 둥근 삼각형, 물결 삼각형, 웅크린 삼각형, 술에 취한 삼각형, 고백하는 삼각형, 삼각형이 바라보는 삼각형, 삼각형 스스로를 그리는 삼각형, 삼각형을 죽이는 삼각형. 쓸데없이 그린 삼각형들을 구겨서 버렸다. 밤하늘에는 만월이 되다 넘쳐버린 달이 떠있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은빛 독백이었다.
발걸음은 지하철 플랫폼에 멈춰 섰다. 반대 방향의 두 열차가 동시에 도착했다. 토사물처럼 사람들이 터져 나왔다. 고단함을 어깨에 지고 있던 천장은 결국 버티지 못했다.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금새 플랫폼이, 철로가, 열차 안이 물에 잠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머리까지 물이 차오른 것을 모르는 듯했다. 두 열차는 물 속을 가르며 역을 떠났다. 그때서야 방금 전까지 누군가와 함께 있었고, 실수로 그 사람과 열차를 바꿔 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람에게도 흉터 같은 아가미가 목 옆에 있기를 바랬다.
심해에서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온몸이 푹 젖어있었다. 하지만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품에 꼭 안은 카메라만은 멀쩡했다. 단 한 장의 사진이 필름에 담겨있었다. 화살처럼 빛을 쏘아 명중시킨 그 사람의 초상이었다.
어스름한 새벽이 집에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옷에서 떨어진 물이 웅덩이처럼 고였다. 이상하게도 창문 너머 풍경이 가장 뚜렷하게 비쳤다.
하늘은 하얬고 구름은 검었다.
하늘은 하얬고 구름은 검었다.
하늘은 하얬고 구름은 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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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울리고 눈을 떴다.
새벽에 잠깐 깼던 기억이 났다.
어쩌면 새벽에 눈을 뜬 게 아니라 길거리를 헤매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