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련회를 갔다. 검은 잎과 검은 가지가 무성한 검은 숲으로.



2.
수련회 일정은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숙소를 정리하고 빨래를 했다. 오후에는 신부님의 성경 강독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미사를 드린 뒤 잠에 들기 전까지 합창 연습을 했다. 단 일 분의 오차도 없이 매일매일 반복되었다. 시간 감각은 점점 흐려졌다. 그래서 아무도 수련회 기간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열흘이 채 안됐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세 달 정도 지났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오 년이 훌쩍 넘었다고 했다. 나는 수련회가 십 년 가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합창 연습이 가장 기묘했다. 매일 밤 우리는 숲 속 가장 은밀한 곳으로 들어갔다. 지휘자도 단장도 없었다. 다같이 노래를 시작하고 다같이 노래를 끝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찬송가를 불렀다. 누가 누구인지 보이지 않았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나무들의 거대한 그림자와 뒤섞였다. 목소리들이 쌓이고 함몰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조금씩 지웠다.

가끔 하늘에 초승달이 떴다. 그 미약한 독백마저도 먹구름에 묵살되었다.



3.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합창 연습이 있었다. 다만 나를 제외한 모두가 사라졌다.

그들은 숲의 가장 바깥을 향해 떠나겠다고 했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들은 검은 망토를 걸치고 손에 양초를 하나씩 들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

떠나기 직전 그들은 내게 물었다. 우리와 함께 가지 않겠냐고. 눈동자에 비친 촛불이 일렁였다. 그 불길 속엔 내가 위태롭게 서있었다.

예전의 나였더라면 그 누구보다도 먼저 앞장섰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곳에 남겠다고 했다. 너희가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저 어딘가로 떠났을 뿐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전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신부님과 가족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안심시키겠다고 했다. 너희가 미쳤다고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모두 없어지면 온갖 추측과 소문이 난무할 테니 나라도 여기 남아 진실을 지키겠다고 했다.

나는 거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벌벌 떨면서 흥분한 나와 달리 그들은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디로 갔는지 말하지 말라고, 다만 우린 그들과 늘 함께한다고 전해달라 했다. 그들은 덤불과 가지를 걷어 더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들의 흔적이 온데간데 없어진 뒤였다. 합창 연습을 했던 이 곳은 그 어느 때보다 적적했다.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두컴컴한 숲길을 홀로 걸어 나왔다. 걸음이 점점 빨라지다 못해 나중에는 도망치듯이 뛰었다. 심장이 터질 만큼 달리고 또 달렸다.

정말 오랜만에 내 발소리를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내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4.
그 날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박사, 목수, 어부, 제빵사, 술집 주인, 과부, 나병환자, 어린이, 법학자, 군인, 판사, 죄수 등등 질문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사라진 이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왜 떠났는지, 안전한 상태인지를 물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했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순 없지만 우리와 늘 함께하며 그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사람들은 나를 숲 밖으로 끄집어내기도 했다. 나는 마구간, 강변, 항구, 병원, 광장, 상가, 식당, 법원, 교도소, 언덕 등을 방문했다. 그 곳에서도 사라진 이들에 대한 진실을 전했다. 그들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사라진 이들의 가족들은 심란해 보였다. 그들은 나의 손을 붙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무 말도 못한 채 망연자실한 자들도 있었다. 주저앉아 흐느끼기도 했다. 하느님이 자비를 베풀 수 있도록, 실종된 자녀들이 무사히 되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진실을 말했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고.



5.
늦은 밤 성당에는 나와 신부님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예배당에 어두운 정적이 흘렀다. 제대(祭臺) 위 촛불만이 벽에 걸린 십자가를 비췄다.

신부님께 가장 마지막으로 이 사건을 알렸다. 그분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신부님은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몇 마디 충고도 해주셨다. 내가 말하는 진실이 슬픈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셨듯이 말이다.

신부님이 기도문을 외우시는 동안 나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존재했을 때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숲과 어둠에 스며든 대가로 나 자신을 지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실종되면서 나는 진실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전했다. 마치 특별한 능력을 부여 받은 듯했다. 이제 사람들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찾았다. 내 눈을 보고, 내 손을 잡고, 내 말을 듣고 싶어했다. 그들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내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들의 흐느낌에서 내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진실은 더 이상 진실만이 아니었다. 진실이 있기에 내가 존재했다. 나는 더 이상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진실로써 환히 존재했다.

존재하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이었다니.

나는 그만 깔깔 웃어버리고 말았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성당 안 적막이 잔인하게 찢겨졌다. 신부님은 그런 나를 섬뜩하게 쳐다보셨다.



6.
부활절이 멀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여전히 사라진 이들에 대한 진실을 전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더 많은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그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다만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웃음이 터졌다. 사람들과 말을 할 때도, 조용히 기도할 때도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일정을 마치고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성당으로 향했다. 잠시라도 진정을 찾기 위해서였다. 불 꺼진 예배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부님도 수녀님도 계시지 않았다. 깊은 물 속처럼 어둡고 고요할 뿐이었다. 촛불도 켜지 않은 채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묵주 알을 짚으며 기도했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잔물결처럼 퍼졌다. 하지만 여전히 올라간 입 꼬리에서 웃음이 키득키득 새어 나왔다.

그 때, 밖에서 희미하게 합창소리가 들렸다.

분명 합창소리였다.



7.
성당 주변을 샅샅이 둘러봤지만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웃음이 싹 가셨다. 내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나뭇가지에 휘감긴 바람소리일 수도 있다. 지나가던 이방인의 흥얼거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은 이미 순식간에 불어나있었다. 그 급류 끝에서 나는 어떻게든 피하고자 했던 질문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그들이 돌아온 걸까?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사람들은 분명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반면 내 모습과 내 목소리는 잊혀질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는 진실을 믿을 것이다. 대신 내가 품은 진실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질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다시 희미해질 것이다.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들은 내 목숨과 같은 진실을 빼앗을 것이다. 나를 없애기 위해 돌아올 것이다. 나를 죽이기 위해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살인자다. 절대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



8.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검은 망토를 걸치고 손에 양초를 들었다. 그리고 권총 한 자루를 챙겼다.

나는 다시 들어갔다. 검은 잎과 검은 가지가 무성한 검은 숲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