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진다.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쏟아져 내린다. 헤맨다. 우왕좌왕. 다리를 셀 수 없다. 무한한 다리. 끝없는 발소리. 그 수많은 헤맴이 찾는 것은 단 하나. 아주 좁고 좁은 출구. 계단. 계단 위로 용솟음한다. 작은 출구. 빛이 보인다.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어둠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찾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일도. 다음 주에도. 한 달 뒤에도. 내년에도. 앞으로도. 매일매일.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찾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에우리디케는 이곳에 없다.
그들은 아주 노쇠한 흰긴수염고래처럼. 어둠 속에서. 심해 속에서 숨을 참는다.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수면 위로 올라간다. 숨한모금. 숨한모금. 내쉬기 위해. 들이쉬기 위해. 바다보다 오래된 파도를 일으키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다시 바다 속. 다시 어둠 속. 그 밑에는 작은 죽집이 있다. 죽. 죽은. 어린 아이가 치아가 나지 않았을 때. 입으로 오물오물 넘기는 것. 죽. 죽은. 늙은 노인이 치아가 모두 빠졌을 때. 혀와 잇몸으로 후루룩 삼키는 것. 죽. 죽은. 죽은. 것. 죽음. 죽. 죽은. 시작. 끝. 죽음. 그리고 어둠. 어둠 속에는 작은 죽집이 있다.
한쪽에 노인이 앉아있다. 창문 너머 하염없이 지하철을 바라본다. 그는 매일 이곳에 온다. 작은. 작은 죽집. 그는 죽을 시켰다.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죽은 나오지 않는다. 웨이터도 없다. 주방장도 없다. 가게 주인도 없다. 노인을 죽을 기다린다. 죽. 죽은. 죽은. 것. 죽음. 죽. 죽은. 시작. 끝. 죽음. 그리고 어둠. 그는 창문 너머 하염없이 지하철을 바라본다. 모자 아래 두 눈은.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걸까. 헤지고 늘어진 그의 입은 편안하게 다물어져 있다.
지하철이 출발한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비릿한 소리. 빠르게. 더 빠르게. 더더더 빠르게. 거친 숨을 내쉬며 앞으로 앞으로. 스쳐 가는 풍경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휘발되는 소중한 무엇들. 공허함. 공허함. 그 자리에 작은 죽집. 시간이 엎질러지지 않은 곳. 천천히. 더 천천히. 더더더 천천히 가라앉는 곳. 멀겋게. 부드럽게. 물컹하게. 따스하게. 무르게. 침전하는. 퇴적하는 기억들. 얼굴들. 순간들.
지하철이 떠나고 노인은 품에서 석류를 꺼낸다.
목구멍으로 빨간 보석을 한 움큼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