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렸어. 눈이 내렸어. 하얀 눈이 내렸어.

버스를 탔어. 텅 빈 버스. 아무도 없었어. 기사님도 없었어. 나 혼자였어. 난 운전할 줄 몰랐어. 하지만 가야 했어. 갈 곳이 있었어. 가야만 했어.

나는 어떤 방법을 고안해냈어. 그 방법대로 했더니 버스가 움직였어. 조금씩 조금씩 움직였어. 다행이었어. 마음이 놓였어. 이제 걱정할 게 없어. 그저 창가 옆 좌석에 앉아 편안하게 바깥을 구경하면 돼.

밖은 온통 눈으로 덮인 폐허였어. 버려진 마을이었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어. 아무도 없는 곳이었어. 재미있는 것 같아. 눈이 내리면 이 보잘것없는 동네가 그 무엇보다 눈에 띄어. 거무튀튀한 건물 벽이, 까맣게 녹슨 지붕이, 썩어버린 쓰레기들이, 타다 남은 잿더미들이, 파헤쳐진 구덩이들이, 불 꺼진 캄캄한 집들이, 눈이 내리면 더욱 분명하게 보여.

길거리에는 임대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어. 외벽에 현수막이 걸려있었어. 커다랗고 슬픈 글씨로 임대라고 적혀있었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어. 임대 건물들이 끝없이 줄지어 있었어. 한 사람의 꿈이 죽어버린 자리야. 한 가정이 또다시 불행에 빠진 자리야. 오지 않은 미래가 유령처럼 맴도는 곳이야. 딱하기도 하지. 유령은 갈 곳이 없어. 그저 차갑게 식어버린 방을 서성일 뿐이야.

방금 전에 구급차가 지나갔어. 요즘 들어 구급차가 자주 보여. 꿈에서도 종종 나타나. 끊어진 생명줄을 다시 엮기 위해, 아니면 예쁜 리본으로 묶기 위해, 아니면 절대 풀리지 않는 매듭을 짓기 위해 출동했어. 하지만 눈은 점점 세차게 내리고 있었어. 갈수록 눈이 쌓이고 있었어. 한 치 앞도 모르는 채 구급차는 멀어져 갔어.

그러고 보니 성난 사람들이 국회의사당을 점령했다고 들었어. 그들은 자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이 세상이 무너질 거라고 했대. 그래서 국회의사당에 침입해서 총을 쏘고 최루탄을 던지고 사람들을 마구 죽였대. 내가 어려서 그런 걸까. 이해가 잘 안 돼. 그들이 지키려는 세상은 이미 폐허인걸. 이미 버려졌는걸. 이미 아무도 없는걸. 그들이 피를 흘리면서까지 바라는 것도 결국 눈에 파묻힐 텐데 말이야.

또 다른 소식도 기억나.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아기가 숨졌다고 들었어. 부모가 그 아기를 죽였다고 했어. 뼈가 부러질 때까지 던지고, 장이 끊어질 때까지 조르고, 몸속에 피가 차오를 때까지 때렸대. 내가 어려서 그런 걸까. 이해가 잘 안 돼. 아기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렇게 한 걸까. 눈으로 피 묻은 손을 씻으면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하지만 핏자국은 눈 위에서 더 도드라질 텐데 말이야.

눈은 결국 더러워질 수밖에 없고.
눈은 결국 더러워질 수밖에 없고.
눈은 결국 짓밟혀지기 위해 내리고.
눈은 결국 짓밟혀지기 위해 내리고.

세상을 바꾸지도 못할 생각들을 하다 보니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어.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어. 집 한 채도, 나무 한 그루도, 풀 한 포기도 없는 벌판이었어. 그 한가운데에 외롭게, 쓰러져 가듯이 웅크리고 있는 붕어빵 노점이 보였어. 나는 항상 이곳을 그리워하곤 했어. 붕어빵 아주머니처럼 친절하신 분은 없었거든. 천막 아래에서 붕어빵 서너 개씩 구워주시곤 하셨어. 붕어빵 아주머니는 왠지 모르게 친숙했어. 어디선가 봤던 사람 같았어. 꿈에서 마주친 얼굴 같았어. 희미하게 남은 기억 같았어. 확실하진 않지만, 우리 엄마랑 몹시 닮은 것 같았어.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 엄마가 마을에서 쫓겨났다고 했거든. 허허벌판에서 길을 잃었다고 했거든. 외롭게, 쓰러져 가듯이 웅크리며 죽었다고 했거든.

나는 내릴 준비를 했어. 하지만 버스는 멈추질 않았어. 멈출 줄을 몰랐어. 오히려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어.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았어. 버스에는 아무도 없었어. 기사님도 없었어. 나 혼자였어.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버스는 미끄러지고 있었어. 나는 미끄러지는 버스를 타고 있었어. 운전자 없는 버스는 빙판길에서 미끄러지고 있었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었어.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어. 나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

눈이 내렸어. 눈이 내렸어. 하얀 눈이 내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