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헤어조크의 숭고와 무아지경적 진실 연구 - <어둠의 교훈>을 중심으로


I. 들어가는 말

           광활한 우주, 거대한 산맥, 미지의 정글, 파괴적인 재난 등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는 자연의 모습은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다. 끝없는 초원을 배경으로 하는 고전 서부영화부터 무한한 우주에서 펼쳐지는 공상과학영화, 스산한 숲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다루는 공포영화, 자연 재해를 극적인 서사와 함께 엮는 재난영화, 그리고 자연의 위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용 다큐멘터리까지 숭고한 자연 현상에 대한 표현은 영화사 전반에 걸쳐서 나타났다.[1]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에서 ‘사용’되는 자연의 압도적인 모습이 과연 엄격한 의미에서의 숭고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위와 같은 경우에 자연은 영화 속 장면의 감각적인 즐거움을 극대화하거나,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거나, 사건이 발생하고 인물이 행동하는 극적인 배경을 제공하는 데에 그친다.[2] 이렇게 목적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자연이 과연 숭고라는 강렬하고 초월적인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이 존재해왔다. 이러한 지적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듯이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는 경이로운 자연 현상을 영화의 형식 및 내용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고 그것 자체를 주제로 삼음으로써 숭고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인 이해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숭고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숭고를 통해 객관적인 사실보다 훨씬 다층적인 차원에 존재하는 ‘무아지경적 진실(ecstatic truth)’을 포착할 수 있다는 본인의 이론을 확립하기도 했다. 이 글은 헤어조크가 영화로 담아내고자 했던 숭고가 동일한 개념을 연구했던 대표적인 철학자인 칸트와 버크의 이론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서 헤어조크가 무아지경적 진실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숭고에 대한 본인만의 철학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영화계에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 그의 1992년작 다큐멘터리인 <어둠의 교훈>(Lessons of Darkness)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II. 칸트와 버크의 숭고와 헤어조크의 숭고 비교

1. 칸트

          칸트는 인간이 초월적인 자연의 모습을 마주할 때 고통과 쾌락을 오고 가면서 느끼는 이성적인 고양을 숭고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고통은 인간이 자연과의 만남 속에서 자신의 실존적 및 인지적 한계를 느끼는 인식에서 비롯하고, 쾌락은 이러한 상황에서 촉발되는 감정적 및 지적 변증법에 따라 인간 내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힘을 느끼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칸트는 숭고를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첫 번째, 역학적 숭고는 우리가 두렵고 파괴적인 자연에 맞서 버티는 상황을 상상하도록 이끔으로써 우리의 이성적 및 도덕적 소명의 우월함을 인식하게 만든다. 두 번째, 수학적 숭고는 거대하고 무한한 대상 앞에서 느끼는 인지적 좌절감을 통해 상상력으로 하여금 우리가 세계를 파악하는 데에 완전성을 추구하고 무한성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품게 한다.[3] 즉, 칸트는 두렵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꺾이지 않으며 심지어는 초월적인 자신의 정신 또한 인식함으로써 느끼는 감정적인 반응을 숭고라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헤어조크는 영화 속 인물을 통해 숭고를 표현한다. 거대한 증기선을 이끌고 산을 넘어 아마존 밀림 한가운데에 오페라 극장을 지으려는 <위대한 피츠카랄도> (Fitzcarraldo)의 피츠카랄도 (사진 1), 회색곰이 되고 싶어 알래스카 국립공원에서 곰들과 함께 살았던 <그리즐리 맨>(Grizzly Man)의 티머시 트레드웰(Timothy Treadwell), 신을 자처하며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 밀림 속에서 광기어린 여정을 강행하는 <아귀레, 신의 분노>(Aguirre, The Wrath of God)의 아귀레 등 헤어조크의 영화 속 인물들은 더 높은 소명, 새로운 수준의 의식, 신체적 및 정신적 변화와 같은 초월성을 추구한다.[4]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초월성을 법, 종교, 도덕 뿐만 아니라 자연의 섭리까지 고통스럽게 거스름으로써 성취하고자 한다. 즉, 헤어조크의 영화 속 인물은 본인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자연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킴으로써 그 상황에 맞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의 초월적인 힘과 우월한 정신을 입증하고자 한다.

           하지만 헤어조크는 이들의 운명을 낙관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피츠카랄도는 증기선을 산꼭대기에 올리는 데에 성공하지만 오페라 극장을 세우기도 전에 파산할 뿐만 아니라 배가 강 아래로 떠내려가버려 그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다. 곰이 되고 싶었던 티머시 트레드웰은 여자친구와 함께 곰에게 산채로 잡아 먹히며, 아귀레는 동료들을 모두 잃고 부서진 뗏목 위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채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쓸쓸하게 소리친다. 이러한 점에서 헤어조크의 숭고는 칸트의 숭고와 대비된다. 칸트는 숭고를 정의하는 데에 있어서 자연을 뛰어넘는 인간의 이성에 중점을 둔다. 숭고한 경험은 초반에 우리의 판단을 좌절시키고 우리의 이해력을 공격하지만 우리는 곧 감각의 한계를 넘어선 이성의 우월함을 경험하며 따라서 숭고는 정신의 편에 있다는 것이 칸트의 견해다. 하지만 헤어조크의 영화 속 인물은 앞서 묘사한 것처럼 자연에 완전히 압도된 나머지 모든 것을 잃거나, 죽음을 맞이하거나, 완전히 미쳐버리는 등 정신의 주체인 자아를 상실하는 결말을 가진다.[5] 즉, 자연 앞에서도 꿋꿋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인간의 정신을 강조한 칸트와 달리 헤어조크는 자연에 도전한 대가로 참혹한 운명을 맞는 인물을 다룸으로써 오히려 자연의 공포스러운 위력과 인간의 연약함을 강조한다.


2. 버크

           그렇다면 버크의 숭고는 어떨까? 우선 버크는 칸트와 달리 숭고를 생리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한다. 달리 말하면 그는 숭고의 미학적 경험에서 이성의 기여를 축소시키고 확장, 고양, 또는 승화의 느낌을 경시한다.[6] 버크가 숭고의 개념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인간이 초월적인 자연 현상을 마주할 때 느끼는 즉각적인 신체적 및 감정적 반응이다.[7] 그가 ‘즐거운 공포’라고 표현하듯이 숭고는 인간이 자연의 광대하고 경외로운 힘을 파악하지 못할 때 느끼는 공포에 근원을 두며 이는 신체적인 긴장과 감정적인 동요를 야기한다. 하지만 버크는 우리가 위협적인 자연으로부터 안전한 거리에 위치함으로써 공포가 감소하고 쾌를 느낀다고 말한다. 즉, 숭고를 정의하는 데에 있어서 칸트는 압도적인 자연을 마주하면서도 그것에 맞서고 심지어 뛰어넘으려고 하는 정신에 초점을 맞춘다면 버크는 자연 앞에서 느끼는 즉각적, 신체적, 감정적인 공포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안전한 거리에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쾌에 중점을 둔다.

           숭고한 경험이 지니는 공포라는 근원과 그것이 신체와 감정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한 버크의 주장은 무자비한 자연 앞에서 일그러지는 인물을 다루는 헤어조크의 영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8] 앞에서 설명한 세 영화에서 나타나듯이 헤어조크는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하는 대상으로서 자연의 공포스러운 면을 강조하고, 점점 더 광기에 가까워지는 인물을 통해 숭고에 대한 신체적 및 감정적 반응을 보여준다. 하지만 버크의 숭고도 마찬가지로 헤어조크의 숭고와 차이점을 가진다. 버크는 인간이 위협적인 자연으로부터 안전하게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면 공포가 줄어들고 쾌가 발생하면서 숭고를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헤어조크의 영화 속 숭고를 나타내는 인물은 그 거리를 반드시 두지는 않으며 그럼으로써 그는 자연에 매몰되고 환각, 망상, 죽음이라는 결과를 맞이한다. 즉, 칸트와 버크의 숭고와 헤어조크의 숭고 사이의 궁극적인 차이점은 자아의 상실이다. 달리 말하면 헤어조크의 숭고는 스스로를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경지인 ‘무아지경’이라는 고유한 특징을 지닌다. 다음 장에서는 ‘무아지경’이라는 개념이 헤어조크의 숭고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가 어떻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숭고 이론을 발전시켰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III. 헤어조크의 숭고와 무아지경적 진실

           헤어조크는 1999년 “Minnesota Declaration: Truth and Fact in Documentary Cinema”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무아지경적 진실’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시네마 베리테[9]가 지향하는 ‘객관적인 사실을 카메라로 포착한다’라는 철학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이 선언문을 작성했다고 밝힌다. 헤어조크는 시네마 베리테가 영화로 담는 것이 “단지 표면적인 진실”일 뿐이며 “카메라를 들고 솔직하고자 노력한다면 진실은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을 비판한다. 즉, 객관적인 사실을 제시한다고 해서 진실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한 헤어조크는 “사실은 규범을, 진실은 깨달음을 만든다”고 지적하면서 “영화에는 더 깊은 진실의 층이 있으며 그곳에서 시적이고 무아지경적인 진실이 있다”고 말한다.[10] 그는 본인이 공동제작한 다큐멘터리인 <네스호에서 일어난 일>(Incident at Loch Ness)에서 주연 배우로 등장하며 이러한 말을 남기기도 한다[11]:

           “저는 언제나 사실과 진실의 차이에 관심이 있었고, 더 깊은 진실 같은 것이 있다고 항상 느꼈습니다. 그것은 영화 속에 존재하고, 저는 그것을 무아지경적 진실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깊고 본유적인 진실이죠.”

           여기서 무아지경적 진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롱기누스의 숭고에 대한 이론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라고 헤어조크는 밝힌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롱기누스는 “On the Sublime”이라는 본인의 저술에서 ‘무아지경’(ekstasis)라는 개념에 대해 다루는데, 이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고양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여기서 그는 자기 자신의 본성을 넘어서고 숭고는 천둥처럼 이를 즉시 드러낸다.”[12] 즉, 롱기누스는 숭고가 초인적인 규모의 모든 것에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이는 감각을 자극하고 관객에게 강력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숭고함을 느낀 관객은 자기 자신을 벗어나 고귀한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더 높은 형태의 진실, 즉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한다.[13]

           따라서 헤어조크의 숭고는 칸트와 버크의 숭고처럼 자연 앞에서 ‘유지’ 및 ‘지속’되는 이성 또는 신체 및 감정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에 진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즉,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릴 만큼 강렬하고 압도적인 경험을 겪음으로써 일상에서는 포착할 수 없는 새로운 수준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숭고이며 무아지경적 진실을 얻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오직 이렇게 숭고한 상태에서만 더 깊은 무언가, 즉 한낱 사실의 적군인 어떠한 종류의 진실이 가능해진다. 나는 그것을 무아지경적 진실이라고 부른다”[14]라는 헤어조크의 발언에서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헤어조크는 영화감독으로서 무아지경적 진실을 자신의 작품에 어떻게 담아냈을까? 역설적이게도 그는 무아지경적 진실을 나타내기 위해 반(反)사실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무아지경적 진실은 “불가사의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조작과 상상과 양식화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15] 마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예수를 33살의 남성으로, 성모 마리아를 17살 여성으로 묘사한 것이 한낱 속임수가 아닌 것처럼 미술, 음악, 문학, 영화는 환상, 양식, 기교를 통해 더 깊은 층위의 진실, 즉 시적이고 무아지경적인 진실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16] 그는 이렇게 말한다[17]:

           “아주 깊은 진실에 도달하려면 당신은 지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상상력을 가지고 일합니다. 저는 모든 장면이 날조되고, 대본으로 쓰여지고, 연출된, 즉 거의 모든 세부 사항이 조작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것은 영화의 주제인 사람에 대한 아주 깊은 진실을 드러냅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무아지경적 진실에서 현실적인 것-관습, 논리, 언어, 개연성 등-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헤어조크는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오페라인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를 예시로 들면서 오페라의 몇몇 작품은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 믿을 수 없고 우리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도 동떨어져 있어 개연성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지만, 관객은 음악의 힘을 통해 그것을 진실로서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현실이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는 너무나 아름다우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본성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헤어조크는 지적한다. 이는 감정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오페라에서 표현되는 감정은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일상적인 인간의 본성에 종속될 수 없다. 그것은 극단적일 정도로 응축되고 고양되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더 이상 응축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가장 직접적인 길로 우리를 숭고에게 인도한다고 헤어조크는 주장한다.[18] 즉, 무아지경적 진실은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의 층위에서는 아주 기이하거나, 터무니없거나,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객관적인 사실을 포착하거나, 개연성 있는 줄거리를 짜거나, 논리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방식 등으로는 닿을 수 없는 진실이다. 오직 현실에서 벗어나야만, 즉 허구 속에서만 추상적이며 응축되며 고양된 순수한 형태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숭고와 무아지경적 진실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이 헤어조크의 이론이다.

           종합하자면, 헤어조크는 자신의 영화에서 경이롭고 공포스러운 자연 앞에 맞서는 인물을 다루지만 인간의 분명한 한계와 유한한 신체적 및 정신적 상태,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운명 또한 보여준다. 결국 자아가 소멸되는 인물은 헤어조크가 본인의 숭고 이론에서 제시한 무아지경적 진실이라는 개념과 연관성을 가진다. 객관적인 사실 너머에 존재하는 무아지경적 진실은 스스로를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경험을 통해서 얻는 새로운 차원의 깨달음이다. 따라서 현실의 층위에서는 포착할 수 없는 무아지경적 진실은 오로지 허구 속 추상적이고 응축되며 고양된 과정을 통해서 닿을 수 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헤어조크의 1992년작 다큐멘터리인 <어둠의 교훈>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비록 앞의 세 영화와 달리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칸트와 버크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숭고와 헤어조크 본인이 내세운 무아지경적 진실을 모두 드러내는 영화이기 때문에 분석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다음 장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V. 헤어조크의 <어둠의 교훈> 분석

1. <어둠의 교훈>에 나타난 전통적인 의미의 숭고

           <어둠의 교훈>은 1차 걸프전이 종료된 직후인 1991년 쿠웨이트에서 촬영되었으며 철수한 이라크 군대에 의해 화염에 휩싸인 유전 지대를 다룬다. 영화의 많은 부분은 헬리콥터에서 찍은 공중 쇼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장면들의 광활한 시야는 지옥처럼 불타오르는 유전의 거대한 규모와 파괴적인 힘을 강조한다 (사진 2). 뿐만 아니라 세상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은 절대자의 관점을 암시하며 인간을 개미처럼 작고 하찮은 존재로 그린다 (사진 3). 즉, 공중 쇼트의 시점은 숭고의 대상인 초월적이며 공포스러운 자연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한편, 거대한 불기둥을 진압하려는 소방관들과 치솟는 유전을 잠그려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지상에서, 즉 인간의 눈높이에서 촬영되었다. 뿐만 아니라 잦은 클로즈업과 슬로우 모션은 화염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강조한다. 소방관들에 대한 부분에서 영화는 화염과 소방관을 번갈아 배치함으로써 파괴적인 자연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특히 불구덩이 옆에 홀로 서있는 소방관의 모습은 숭고를 표현한 대표적인 낭만주의 회화인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를 연상케 한다 (사진 4). 유전을 잠그려는 노동자들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커다랗고 무거운 중장비를 사용하여 고되게 애쓸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분출하는 기름에 온몸이 뒤덮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사진 5). 마침내 성공적으로 유전이 잠기는 장면은 자연을 극복한 인간의 승리를 상징하는 듯하다. 이러한 부분은 칸트의 숭고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공포스러운 자연 현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에 위치해 소명을 다하는 인간의 모습은 버크의 숭고와 일맥상통한다.



2. <어둠의 교훈>이 담아내는 무아지경적 진실

           한편 <어둠의 교훈>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조작으로 점철되어 있다. 영화가 시작할 때 등장하는 파스칼의 구절부터 헤어조크 본인이 지어낸 것이다.[19] 이어서 오프닝 시퀀스에서 “흰 산맥, 구름, 안개에 가려진 땅”이라는 헤어조크의 내레이션과 함께 황폐한 산봉우리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사실 트럭이 사막을 달리면서 만들어낸 작은 먼지와 흙 더미들을 확대해서 촬영한 것이다.[20] 또한 헤어조크는 도시의 풍경을 공중 쇼트로 보여주면서 내레이션을 통해 “이 도시는 곧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임박한 멸망을 눈치채지 못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 장면을 촬영한 시점에는 전쟁이 종료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헤어조크의 내레이션은 유전에 불을 붙이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처럼 묘사한다. 그는 그들을 파괴적인 화염이 있어야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광기에 찬 자들로 그린다. 하지만 사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기름을 태워야 하기 때문에 유전에 불을 붙이는 소방관들의 행동은 지극히 합리적인 조치이다.[21]

           헤어조크는 유전에서 일어나는 화재의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영화의 장소에 대해서도 쿠웨이트가 아니라 “우리 태양계의 한 행성”이라고만 모호하게 언급할 뿐이다. 이렇게 생략된 설명과 더불어 카메라가 비추는 장면은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외계 행성 또는 대재앙 이후의 세계와 유사하다 (사진 6과 7). “<어둠의 교훈>에서는 지구를 알아볼 수 있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공상과학영화’로 분류되기도 하지요. 마치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먼 은하계에서만 촬영되었을 것처럼 말입니다”[22]라고 부연하는 헤어조크의 발언에서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어둠의 교훈>은 199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시사회를 가졌을 때 1500명이 넘는 관객으로부터 분노에 찬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 이유는 전쟁의 참혹한 여파와 끔찍하게 오염되는 환경을 미화하고 정치사회적으로 탈맥락화하여 식민주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 이념적인 원인에 대한 비판을 빠뜨렸다는 것이었다.[23] 하지만 <어둠의 교훈>의 목표는 1차 걸프전과 관련된 정치적이고 환경적인 문제들을 관객에게 교육시키기보다는 대재앙이 주는 무시무시한 인상을 창조하고 전달하는 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영화의 ‘교훈’은 공포스럽고 파괴적인 자연의 모습을 ‘구성’한 이미지를 통해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운명에 대한 보편적인 주장을 제시하고 무아지경적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다.[24] 헤어조크는 <어둠의 교훈>에서 시간과 공간을 의도적으로 조작하여 관객이 일관되고 역사적으로 근거한 서사를 구성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무아지경적 진실이 일상을 넘어선 차원에 존재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 개연성 있는 줄거리, 논리적인 설명이 아니라 환상, 양식, 기교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는 헤어조크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그가 <어둠의 교훈>에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장면을 미적으로 촬영한 이유는 객관적인 사실 너머에 있는 깊은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다고 말할 수 있다.

           헤어조크의 이러한 접근은 언론, 특히 유선 방송에서 전쟁이 보도되는 방식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견해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헤어조크는 “이라크에서 1차 전쟁이 일어나고 쿠웨이트에서 유전이 불타고 있을 때에도 언론(특히 텔레비전)은 이 사건을 전쟁 범죄를 넘어선 우주적 차원의 사건이자 창조물 자체에 대한 범죄라는 것을 보여줄 위치에 있지 않았다”[25]고 지적한다. 불타는 유전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사용하여 자극적인 보도만을 제공하는 언론은 전쟁이 지닌 훨씬 복잡하고 감정적(visceral)인 공포를 충분하게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전쟁을 흥미로운 광경으로 취급하는 언론에 의해 관객은 전쟁의 참혹함에 무디어진다는 점도 꼬집는다.[26] 이렇게 언론이 사실을 포착하는 방식에 부정적이었던 헤어조크는 오히려 반대로 조작과 상상력과 기교를 활용하여 전쟁의 끔찍함을 진정하게 담아내고 이를 통해 더 깊은 진실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VI. 맺는 말

           숭고는 헤어조크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할 정도로 그에게 중요한 개념이며 따라서 어떤 작품과 관점을 선택하는지에 따라서 다양하게 연구되는 주제이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라는 서로 다른 형식, 작품 속 인물의 관계, 풍경과 미장센의 역할, 배우로 등장할 만큼 빈번한 감독의 개입 등의 요소들에 주목할 수도 있으며 특히 영화에서 사용되는 음악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헤어조크는 “어떤 이미지는 특정 음악이 배경으로 재생되고 있을 때 더 선명하고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그것이 물리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면의 특성이 드러나고 새로운 관점이 열립니다”[27]라고 언급할 정도로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 음악은 창조적인 방식으로 이미지가 주는 인상을 강화하고 감정을 고양시킴으로써 관객이 무아지경적 진실에 닿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내레이션이나 대사보다는 음악으로 대부분 구성된 <어둠의 교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렇게 헤어조크의 영화에서 숭고의 미적 경험에 기여하는 요소들에게 각각 관심을 기울여 탐구하는 작업은 앞으로의 또다른 연구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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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 Brandon (2023), Murky waters: Incident at Loch Ness, Grizzly Man, and Herzogian notions of truth”, New Review of Film and Television Studies, vol. 21, no. 3.





[1] Martin Lefebvre (2006), “Introduction”, Landscape and Film (M. Lefebvre, ed.), Routledge, pp. xi-xxxi.

[2] Danny Roy Jennings (2017), “The Aesthetics of Nature and Cinematic Sublime: A Creative Investigation into an Organic Transcendental Film Style” [Doctoral dissertation, Curtin University], p. 75.

[3] Sandra Shapshay (2014), “The Problem and Promise of the Sublime: Lessons from Kant and Schopenhauer”, Suffering Art Gladly: The Paradox of Negative Emotion in Art(J. Levinson, ed.), Palgrave Macmillan, pp. 87-90.

[4] William Verrone (2011), “Transgression and Transcendence in the Films of Werner Herzog”,Film-Philosophy, vol. 15, no. 1, pp. 180-182.

[5] Patrícia Castello Branco (2022), “Kant and Burke’s Sublime in Werner Herzog’s Films: The Quest for an Ecstatic Truth”, Film-Philosophy, vol. 26, no. 2, pp. 156-159.

[6] Sandra Shapshay (2014), pp. 85-86.

[7] Patrícia Castello Branco (2022), pp. 159-160.

[8] Patrícia Castello Branco (2022), pp. 160-161.

[9]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é)는 196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다큐멘터리 영화 기법이다. 이 스타일은 카메라의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기록 능력에 기반하여 일상적인 삶과 사회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량 카메라와 동시 녹음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가능해진 시네마 베리테는 주로 현장 촬영과 즉석 인터뷰를 활용하고, 연출 및 편집 등 감독의 개입을 최소화하며, 관찰과 인터뷰를 결합하여 현실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려는 특징을 지닌다. 대표적인 감독으로 Frederick Wisemen, Albert Maysles, D. A. Pennebaker, Jean Rouch, Edgar Morin 등이 있다. (The Columbia Film Language Glossary의 “Cinema Verité” 항목 참고. 2024.12.31 접속.  https://filmglossary.ccnmtl.columbia.edu/term/cinema-verite/ )

[10] Werner Herzog (1999), “Minnesota Declaration: Truth and Fact in Documentary Cinema”, Walker Art Center, 2024.12.29.

[11] Brandon West (2023), “Murky waters: Incident at Loch Ness, Grizzly Man, and Herzogian notions of truth”, New Review of Film and Television Studies, vol. 21, no. 3, p. 568.

[12] Werner Herzog (2010), “On the Absolute, the Sublime, and Ecstatic Truth”, Arion: A Journal of Humanities and the Classics, vol. 17, no. 3, p. 10.

[13] Xiaochu Dai (2024), “The Enlightenment of Ecstatic Truth for Developing Sublime Aesthetic Experiences in the Post-cinematic Era”, International Journal of Education and Humanities, vol. 15, no. 1, p. 365.

[14] Werner Herzog (2010), p. 1.

[15] Werner Herzog (1999)

[16] Werner Herzog (2010), p. 9.

[17] Daniel Sponsel & Jan Sebenig (2014), “Revolver Interview: Werner Herzog”, Werner Herzog: Interviews (E. Ames, ed.), 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p. 141.

[18] Werner Herzog (2010), p. 8.

[19] Herzog (2010), p. 1.

[20] Paul Cronin (ed.) (2014), Werner Herzog: A Guide for the perplexed, Faber and Faber, pp. 292-293.

[21] Brad Prager (2011), “An Image of Africa”, The Cinema of Werner Herzog: Aesthetic Ecstasy and Truth, Wallflower Press, pp. 420-426.

[22] Herzog (2010), p. 2.

[23] Colin Gardner (2021), “Constructing an Immanent Sublime: Ecosophical Aesthetics as “Ecstatic Truth” in Werner Herzog’s Lessons of Darkness (1992)”, Journal of Ecohumanism, vol. 1, no. 1, p. 48.

[24] Prager (2011), p. 422.

[25] Herzog (2010), p. 2.

[26] Gardner (2021), p. 48.

[27] Richard Eldridge (2019), “Introduction: Images and Contemporary Culture”, Werner Herzog: Filmmaker and Philosopher, Bloomsbury Academic, pp. 40-41.